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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서 원자까지: 인류는 어떻게 시간을 잴 수 있게 되었나

14세기 유럽의 농부에게 "한 시간이 얼마나 길까요"라고 물었다면, 그 질문 자체가 이상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의 세계에서 한 시간은 정해진 길이가 없었습니다. 낮을 열둘로 나누고, 밤을 열둘로 나눴습니다. 여름 낮의 한 시간은 겨울 낮의 한 시간보다 거의 두 배 길었습니다.

"한 시간은 60분, 하루는 24시간, 어느 한 시간이든 길이가 같다"는 생각은 오래된 상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발명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명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시계의 역사에는 "시계가 더 정확해졌다"보다 또렷한 줄기가 있습니다. 인류는 세 번, 시간을 자연에서 떼어냈습니다.

처음에는 해시계와 물시계가 태양의 움직임을 나눌 수 있는 눈금으로 바꿨습니다. 두 번째로 탈진 장치가 하늘을 보지 않고도 시간이 흐르게 했고, 바로 그 순간 길이가 같은 시간이 태어났습니다. 세 번째로 초의 정의가 지구 자전에서 세슘 원자의 전이로 옮겨가면서, 시간은 천문학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그리고 2026년 10월, 이 이야기는 또 한 장을 넘겼습니다.

I. 태양의 그림자

시계가 없던 시절, 시간은 사건의 목록이었다

가장 오래된 시간 단위는 "시간"이 아니라 "사건"이었습니다. "향 한 대", "밥 한 끼 먹는 동안", "해가 지기 전", "닭이 첫 울음 울 때까지". 이런 표현은 지금도 쓰이고, 특징은 길이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농경 사회에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체계가 무너진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조율 — 종교 의식은 모두가 같은 순간에 시작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기록 — "사흘 전"은 날짜가 아닙니다. 사건의 시간으로는 둘 다 답할 수 없어서, 사람들은 안정된 기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이 가장 뻔한 후보였습니다.

그림자를 열둘로 자르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해시계 가운데 하나는 기원전 1200년경의 이집트 그림자 시계입니다. 설계는 거의 소박합니다. 가로 막대 한쪽 끝에 세운 판이 있고, 막대를 따라 눈금이 있습니다. 아침에는 판이 동쪽을 향해 그림자가 서쪽 눈금에 떨어지고, 오후에는 반대가 됩니다. 그림자가 닿는 곳이 곧 시각입니다.

가로 막대에 눈금이 새겨지고 한쪽 끝에 세운 판이 있는 고대 이집트 그림자 시계

이집트 그림자 시계, 석회암. 사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C0, Wikimedia Commons

바빌로니아인들은 더 나아가 반구형 그릇을 문자판으로 쓰고 그림자의 경로를 열둘로 나눴습니다. 열둘은 임의의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수학은 60진법을 썼고, 12는 60을 나누어떨어뜨립니다. 12시간 문자판과 360도 원은 모두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은 다른 길을 갔습니다. 규표(gnomon)입니다. 수직 막대가 가로 눈금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정오 그림자의 길이가 동지와 하지를, 나아가 역법을 확정합니다. 일상의 시각을 재는 데는 시침의 그림자가 눈금면에 떨어지는 해시계를 썼습니다.

로마의 실수

해시계에는 숨은 복잡함이 있습니다. 눈금이 위도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로마에서 맞는 문자판은 다른 어디에서도 맞지 않습니다.

로마는 이걸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기원전 264년, 로마는 시칠리아 카타니아에서 해시계를 약탈해 포룸에 세웠습니다. 카타니아는 로마보다 남쪽이라 그림자 각도가 맞지 않았습니다. 시계는 틀린 시각을 알려줬고, 기원전 164년에 누군가 로마의 위도에 맞게 다시 조정할 때까지 약 100년 동안 틀린 채로 있었습니다.

이 교훈은 이 역사 전체에서 되풀이됩니다. 시간 측정 도구의 정확도는 기술이 아니라 일관되지 않은 기준 때문에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명적 결함

해시계는 세 가지 이유로 실패합니다. 구름, 밤, 그리고 위도입니다.

앞의 둘은 새로운 접근을 강제했습니다. 세 번째는 2천 년 뒤 세계적인 정치 문제가 되었습니다. 시간대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래에서 이어집니다.

II. 물과 불과 향

태양 대신 물을 흐르게 하다

물시계 — 그리스어로 "물도둑"이라는 뜻의 클렙시드라 — 는 뻔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태양이 필요 없다는 것.

가장 이른 기록은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궁정 관리 아메넴헤트의 묘비명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발명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예는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의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물이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수위가 내려가고, 그 수위가 얼마나 지났는지 알려줍니다.

몸체가 위에서 아래로 좁아지고 원숭이 조각이 새겨진 석회암 이집트 유출식 물시계

이집트 물시계, 프톨레마이오스 2세 시대(기원전 285–246), 석회암. 사진: 시카고대학교 오리엔트 연구소 박물관, CC0, Wikimedia Commons

그런데 단순한 설계에는 물리적 결함이 있습니다. 수위가 내려가면 압력이 떨어집니다. 가득할 때는 빨리 흐르고, 거의 비었을 때는 느리게 흐릅니다. 눈금의 같은 간격이 이른 시각과 늦은 시각에 서로 다른 길이를 뜻하게 됩니다.

이집트인들은 용기를 아래로 좁혀 보정했습니다. 수위가 내려가면 수면 면적이 줄어 압력 손실을 일부 상쇄합니다. 중국의 해법은 더 철저했습니다.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 서기 550년경 은규(殷夔)는 《누각법(漏刻法)》에서 넘침 탱크를 설명했습니다. 넘치는 물이 옆 구멍으로 흘러나가므로 본 용기의 수위는 변하지 않고 유량도 안정됩니다.

소송의 천문탑

중국의 수력 측시는 1088년 소송(蘇頌)이 물로 움직이는 천문 시계탑을 완성하면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높이 10미터가 넘는 목조 구조물로, 물레바퀴로 동력을 얻어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했습니다. 하늘을 관측하고, 천체의 움직임을 시연하고, 시각을 알리는 일입니다.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하나는 물레바퀴의 동력을 꼭대기의 혼천의로 전달하는 체인 전동을 썼다는 점입니다. 현존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체인 전동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보 장치로, 기계 인형이 나와 종을 치고 북을 두드리고 패를 드는 구조여서 "지금 몇 시인가"를 공개적인 볼거리로 바꿨습니다.

이 기계는 전란에 파괴되었지만, 물로 복잡한 장치를 돌려 하늘을 모델링한다는 기술적 접근은 훗날 유럽의 기계식 시계가 시도할 것과 나란히 놓입니다.

향과 초, 그리고 "잠깐"

중국에는 더 값싼 측시 도구도 있었습니다. 향을 태우는 것입니다. 나선형 향에는 눈금이 붙어 있어 어디까지 탔는지가 시각을 알려줬고, 막대향과 초에도 같은 방식으로 눈금을 새기곤 했습니다. 서기 520년의 시에는 밤에 시간을 알리는 데 쓰인 눈금 초가 이미 등장합니다.

향시계는 값싸고 휴대할 수 있으며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정확했고 바람에 민감했습니다. 진짜 의의는 기간을 눈에 보이게 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몇 시인지 몰라도,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공통의 한계

물시계와 향, 초에는 같은 한계가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재지만 현재 시각은 알려주지 못합니다.

물시계는 두 시간이 지났다고 말해줍니다. 지금이 오후의 세 번째 시간이라고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여전히 태양이 필요했습니다. 연속 측정과 직접 표시를 동시에 해낸 첫 기술이 기계식 시계입니다.

III. 한 시간은 늘 같지 않았다

기계식 시계 이전을 다루려면 "불균등 시간( temporal hours)"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체계 전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로마인과 중세 유럽인은 낮을 열둘, 밤을 열둘로 나눴습니다. "한 시간"은 고정된 양이 아니라 비율이었습니다. 여름에는 낮의 한 시간이 길고, 겨울에는 짧았습니다. 1년을 통틀어 낮의 한 시간은 대략 45분에서 75분 사이를 오갔습니다.

왜 이렇게 나눴을까요? 이 체계가 종교를 위해 쓰였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에는 하루 일곱 번의 기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조과, 찬과, 삼시과, 육시과, 구시과, 만과, 종과입니다. 이들은 자정으로부터의 간격이 아니라 하루 중의 지점으로 정의되었습니다. 기도가 태양의 특정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면, 불균등 시간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 체계에서 일반인에게 정확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정오", "저녁"이면 충분했습니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교회 종이 알려줬습니다. 시간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공공 방송이었습니다.

전환점은 13세기에 왔습니다. 해시계 눈금이 균등한 구획, 즉 길이가 일정한 24시간으로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정돈을 좋아하게 되어서가 아닙니다. 새로운 기계가 일정한 단위를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기계식 시계의 톱니바퀴와 폴리오는 계절에 따라 속도가 변하지 않습니다.

균등한 시간은 시계가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시계가 강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역사 전체에서 가장 직관에 어긋나고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IV. 탈진 장치

본질은 톱니가 아니다

사람들은 기계식 시계의 본질이 톱니바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톱니바퀴는 시계보다 수백 년 앞서 물레방아, 풍차, 기중기에 쓰였습니다.

실제 발명은 **탈진 장치(escapement)**였습니다. 이 장치는 한 가지 일을 합니다. 연속적인 회전을 일정한 박동의 연속으로 바꿉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추가 줄을 당기고 톱니열은 자유롭게 돌고 싶어 합니다. 탈진 장치는 문입니다. 바퀴를 붙잡고, 정확히 한 톱니만큼 넘겨주고, 다시 붙잡습니다. 딸깍 소리 한 번이 고정된 시간 단위 하나입니다.

1275년경 등장한 베르주-폴리오 탈진 장치는 시계 기술 최초의 조속기였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기계가 처음으로 스스로 시간을 세게 해주었습니다.

왜 수도원이었나

최초의 기계식 시계가 수도원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수도원은 정해진 시각에 기도해야 했고, 물시계는 겨울에 얼었으며 계속 물을 채워야 했고, 해시계는 구름 아래에서 쓸모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돌아가고 손이 가지 않는 기계는 실제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기록에 남은 가장 이른 대형 기계식 시계 가운데 하나는 1273년 노리치 대성당의 탑 시계입니다. 지급 기록만 남았고 시계 자체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1336년 밀라노에는 정기적으로 시각을 치는 최초의 알려진 시계가 있었습니다. 1344년 런던의 옛 세인트폴 대성당은 탈진 장치를 쓴 시계로 교체했습니다.

얼마나 부정확했나

이 시계들은 극도로 부정확했고, 이 점은 분명히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예는 1360년경 앙리 드 비크가 파리 왕궁을 위해 만든 시계입니다. 하루 오차가 두 시간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조잡한 솜씨 탓이 아니라 탈진 장치의 물리적 한계였습니다. 베르주 탈진 장치에는 등시성이 없습니다. 구동력, 마찰, 온도의 변화가 곧바로 속도를 바꿉니다.

두 시간의 오차는 당시 치명적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지금 3시 47분"이 아니라 "기도할 시간" 또는 "일을 시작할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계는 재는 도구가 아니라 알리는 도구였습니다.

시계탑이 기반 시설이 되다

1371년에서 1380년 사이, 70개가 넘는 유럽 도시가 공공 시계를 설치했습니다. 잠깐 그 숫자를 생각해 보세요.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70개 도시입니다.

시계탑은 도시 생활을 바꿨습니다. 노동 시간이 종소리로 표시되기 시작했고, 시장 개장과 통금, 장인의 하루가 모두 시계를 따랐습니다. 시간은 교회의 재산에서 도시의 것으로, 다시 개인의 것으로 옮겨갔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동 기계식 시계 가운데 하나는 1386년 솔즈베리 대성당의 시계입니다. 중세의 베르주 탈진 장치와 폴리오 — 양끝에 추를 매단 가로 막대로, 그 흔들림이 속도를 조절합니다 — 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솔즈베리 대성당의 1386년 기계식 시계. 폴리오 막대와 톱니열이 보인다

솔즈베리 대성당 시계(약 1386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동 기계식 시계 가운데 하나. 사진: Adrian Pingstone,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1392년 웰스 대성당의 시계는 더 나아갔습니다. 원래의 중세 문자판을 간직한 채, 15분마다 한 바퀴 도는 기사 인형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천문 시계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유럽 도시들은 천문 시계를 짓느라 경쟁했습니다. 이 시계들은 시각만 보여주지 않고 달의 위상, 행성의 위치, 황도 십이궁, 절기, 종교 축일을 함께 보여줬습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시계가 가장 유명하고, 1574년의 판화가 그 구조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여러 층의 문자판과 자동 인형이 있는 탑 형태의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천문 시계 1574년 판화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천문 시계, 1574년 판화. 사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CC0, Wikimedia Commons

천문 시계는 하나의 선언이었습니다. 시간은 고립된 숫자가 아니라 하늘의 움직임에 묶여 있다는 것. 그 관념은 19세기 철도가 시간을 하늘에서 끌어내릴 때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분침과 초침은 나중에 왔다

쉽게 지나치는 사실이 있습니다. 중세 시계 대부분에는 시침만 있었습니다.

1475년의 필사본이 분 문자판이 있는 시계를 처음 언급합니다. 1577년 튀코 브라헤는 초를 읽을 수 있는 최초의 시계 몇 대를 손에 넣었습니다. 초침이 흔해진 것은 1690년대, 밸런스 스프링이 정확도를 끌어올려 초가 의미를 갖게 된 뒤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3시 47분"은 "지금 3시"보다 약 2세기 늦게 일상에 들어왔습니다.

휴대하기

1510년경 뉘른베르크의 자물쇠 장인 페터 헨라인은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1524년 그는 초기 회중시계를 만든 대가로 돈을 받았고, 이는 대체로 휴대용 시계의 시작으로 취급됩니다.

널리 퍼진 이야기 하나를 바로잡자면, "뉘른베르크 알"이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은 것입니다. 남아 있는 물건들이 반드시 달걀 모양이었던 것도 아니고, 역사학자들은 이 명칭을 오래 두고 논쟁해 왔습니다.

V. 진자와 태엽

갈릴레오의 관찰

1583년 갈릴레오는 피사 대성당에서 흔들리는 램프를 보았습니다. 흔들림이 크든 작든 한 번 흔들리는 시간은 같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이 진자의 등시성입니다.

이 관찰이 값진 이유는 자연의 주기를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톱니는 닳고 추는 가벼워지지만, 길이가 정해진 진자의 주기는 고정되어 있습니다.

하위헌스가 시계를 만들다

1656년 12월 25일, 네덜란드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최초의 진자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숫자가 이야기를 해줍니다. 진자 이전 최고의 기계식 시계는 하루에 약 15분씩 어긋났습니다. 진자는 이것을 하루 약 15초로 떨어뜨렸습니다. 한 단계에서 60배 개선 — 시계 역사상 가장 큰 단일 개선입니다.

이후 개선은 두 갈래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는 탈진 장치입니다. 1658년경 로버트 훅이 앵커 탈진 장치를 고안해 진자의 흔들림을 80–100도에서 4–6도로 줄였습니다. 흔들림이 작을수록 등시성이 좋아지고 속도가 안정됩니다. 1675년 리처드 타운리가 데드비트 탈진 장치를 발명했고, 조지 그레이엄이 1715년경 보급해 정밀 시계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온도입니다. 금속은 가열되면 팽창하고, 막대가 길어지고, 시계는 느려집니다. 1721년 그레이엄은 수은 진자를 발명했습니다. 막대가 팽창할 때 수은도 팽창해 표면이 올라가고, 무게 중심이 다시 위로 올라가 오차를 상쇄합니다. 1720년대 존 해리슨은 팽창률이 다른 두 금속을 맞물려 서로를 견제하게 하는 격자 진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보정은 온도 오차를 무의미한 수준까지 끌어내렸습니다.

18세기 중반 무렵 최고의 정밀 진자 시계는 주당 몇 초 정확도에 도달했습니다.

경도 문제

진자는 육지에서 정확도를 해결하고 바다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배가 흔들려 진자가 안정적으로 흔들 수 없고, 주기가 중력에 의존하는데 중력은 적도와 극 사이에서 약 0.5% 변하며, 바다의 온도와 습도 변화가 보정 장치를 무력화합니다.

그런데 바다는 정확한 시간이 가장 중요했던 곳입니다. 경도가 곧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한 시간에 15도를 돕니다. 지역 정오와 그리니치 시각의 차이를 알면 경도를 알 수 있습니다. 4초의 오차가 약 1해리의 위치 오차입니다.

1707년 영국 함대가 경도를 잘못 계산해 실리 제도에 좌초했습니다. 전함 네 척이 가라앉고 거의 2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 참사는 곧바로 1714년 경도법으로 이어졌고, 이 법은 바다에서 경도를 구하는 실용적 방법에 최대 2만 파운드를 걸었습니다.

해리슨의 H4

목수 출신의 존 해리슨이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는 네 대의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H1(1735), H2(1741), H3(1759)는 모두 너무 크고 무거웠습니다. H4(1761)는 지름 약 12센티미터로 큰 회중시계 모양이었고, 온도 보정 나선 스프링이 달린 빠른 진동 밸런스를 썼습니다. "진자 시계"에서 "휴대용 진동자"로의 전환이었습니다.

1761년 11월 18일 H4는 HMS 데프퍼드호를 타고 자메이카로 향했습니다. 항해는 81일 5시간이 걸렸습니다. 킹스턴에 도착해 알려진 경도와 비교하니 시계는 5초 느렸습니다. 약 1.25분각, 대략 1해리입니다.

상금이 요구한 것보다 세 배 좋은 성적이었습니다.

해리슨은 2만 파운드를 받지 못했습니다. 경도위원회는 거듭 그를 문제 삼았고 설계를 분해해 공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는 결국 분할 지급으로 약 2만 3,065파운드를 받았고, 공식 상금 전액은 끝내 받지 못했습니다. 이 분쟁 자체가 기술사에서 되풀이되는 주제입니다. 기술적 돌파와 정치적 결말은 거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진자의 한계

진자 시계는 200년이 넘도록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측시기였습니다. 1923년 쇼트 자유 진자 시계는 연간 1초보다 나은 정확도에 도달했고,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가장 정밀한 진자 시계로 남았습니다.

왼쪽에 밀폐된 저압 진자실, 오른쪽에 보조 문자판이 있는 쇼트 자유 진자 시계

쇼트 자유 진자 시계(1923), 연간 1초보다 정확. 사진: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1656년부터 1927년까지, 진자는 270년 동안 시간을 지배했습니다.

VI. 시간을 통일하다

도시마다 정오가 달랐다

시계가 정확해지자 새로운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다른 곳의 시계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정상이었습니다. 정오를 태양이 가장 높은 순간으로 정의하면, 도시마다 정오가 다릅니다. 런던과 브리스틀은 약 10분, 런던과 리버풀은 약 12분 차이입니다. 말이 교통수단이던 시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하루에 그 거리를 갈 수 없었으니까요.

철도가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철도 시간

1840년 그레이트웨스턴 철도는 전 노선에서 런던 시간으로 통일한 첫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실용적이었습니다. 시간표가 열두 개의 지역 시간을 감당하면 승객이 환승을 잘못 계산합니다.

1883년 11월 18일, 미국 철도는 북미를 네 개 구역으로 나누고 "철도 표준시"를 채택했습니다. 그날은 "정오가 두 번 온 날"로 불렸습니다. 많은 도시에서 정오를 두 번 겪었기 때문입니다.

1884년 워싱턴 회의

1884년 10월, 25개국 대표가 워싱턴에 모여 단일 본초 자오선을 정했습니다. 주요 후보는 그리니치와 파리였습니다.

그리니치가 이긴 것은 과학이 아니라 보급률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해운의 3분의 2가 이미 그리니치 기준 해도를 쓰고 있었습니다. 기준을 바꾸면 전 세계 해도를 다시 찍어야 했습니다.

회의는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과 시간대 체계의 틀을 세웠습니다. 다만 회의는 권고만 했습니다. 채택에는 수십 년이 걸렸고, 프랑스는 1911년에야 그리니치 기준을 공식 채택했습니다.

시간대는 기하학이 아니라 입법이다

오늘의 시간대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정치적 선택입니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약 5시간에 걸쳐 있으면서도 UTC+8 하나를 씁니다. 신장 서부에서는 해가 오전 10시쯤에 뜨기도 합니다. 스페인은 지리적으로 대략 UTC+0에 있지만 중부 유럽과 맞추려고 UTC+1을 씁니다. 인도는 UTC+5:30, 네팔은 UTC+5:45 — 세계에서 유일한 45분 오프셋입니다.

이 중 어느 것도 천문학적 사실이 아닙니다. 입법적 사실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면 "UTC+8"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혼란이 크게 줄어듭니다.

역의 시계

철도 시대가 남긴 가장 눈에 띄는 유산은 역의 큰 시계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측시기가 아니라 공개적인 약속입니다. 이 시계의 시간이 이 노선의 표준 시간이다.

캐나다 킹스턴 역의 그랜드트렁크 철도 벽시계. 목재 케이스의 긴 진자 시계

그랜드트렁크 철도 역 시계, 캐나다 킹스턴. 사진: Mr Serjeant Buzfuz, CC0, Wikimedia Commons

VII. 쿼츠에서 원자로

쿼츠: 수정을 진동시키다

1927년 10월, 벨 연구소의 호턴과 매리슨이 최초의 쿼츠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압전 효과를 이용합니다. 수정에 전압을 걸면 극히 안정된 주파수로 진동합니다. 나중에 손목시계에서 흔해진 값은 초당 32,768회이고, 그보다 훨씬 높은 주파수도 씁니다.

쿼츠는 곧바로 최고의 진자 시계를 앞질렀고, 진자가 필요 없고, 진동을 견디고, 작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1969년 세이코는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 아스트론을 출시했습니다. 20년 안에 쿼츠는 기계식 시계를 대중 시장에서 밀어냈습니다.

원자: 물리학이 시간을 지키게 하다

1949년 암모니아 분자의 전이를 이용한 최초의 원자 시계 원형이 만들어졌습니다.

1955년 영국 국립물리연구소의 루이 에센과 잭 패리가 최초의 실용적인 세슘빔 원자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세슘-133 원자가 두 에너지 준위 사이를 전이할 때 방출하는 마이크로파 주파수를 이용했습니다. 물리학이 고정한 주파수여서 온도와 압력, 마모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초기 원자 시계의 빔 장치 옆에서 세슘이 든 유리 캡슐을 손에 든 모습

초기 원자 시계의 세슘 캡슐과 빔 장치, 미국 국립표준국. 사진: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1967년 제13차 국제도량형총회가 결정적인 변경을 단행했습니다. 초는 더 이상 지구 자전으로 정의되지 않고, 세슘-133 원자 바닥 상태의 두 초미세 준위 사이 전이에 해당하는 복사의 9,192,631,770 주기로 정의됩니다.

이것이 세 번째이자 가장 완전한 분리였습니다. 시간은 더 이상 어떤 천체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원자에만 의존합니다.

윤초: 끝나가는 패치

원자 시간은 극히 안정적이지만 지구 자전은 그렇지 않습니다. 느려지고 있고, 흔들립니다.

시계 시간과 천문학적 시간을 맞추기 위해 1972년 윤초가 도입되었습니다. 둘이 0.9초 가까이 벌어지면 6월 30일이나 12월 31일 끝에 "23:59:60"이라는 초를 끼워 넣습니다.

1972년부터 2016년까지 윤초는 27번 추가되었고, 마지막은 2016년 12월 31일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추가되지 않아 국제원자시와 협정 세계시의 차이는 37초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윤초는 컴퓨팅에 실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2012년 윤초로 다수의 리눅스 서버에서 CPU 사용률이 치솟았고, 2016년에는 클라우드플레어의 일부 서비스가 오작동했습니다. 이유는 "23:59:60"이 시간선 위에서 두 번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시간이 앞으로만 간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환점이 왔습니다.

2026년 10월 15일, 베르사유에서 열린 제28차 국제도량형총회가 윤초 폐지를 의결했습니다. 2027년 5월 20일 세계 측정의 날부터 "연속 협정 세계시"가 시행됩니다. UTC는 더 이상 천문학적 시간을 따라가려고 초를 더하거나 빼지 않고, 둘 사이에 허용되는 편차는 0.9초에서 3,600초, 즉 한 시간으로 넓어집니다.

결정의 배경에는 구체적인 우려가 있습니다. 최근 지구 자전이 빨라지면서 음의 윤초, 즉 1초를 삭제하는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양의 윤초는 선례가 있지만 음의 윤초는 한 번도 없었고, 시간의 연속성에 의존하는 시스템에는 완전히 새로운 위험입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이 제도에서 빠져나오는 편이 낫다는 판단입니다.

1972년부터 2027년까지, 윤초는 55년을 살았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폐지된 몇 안 되는 시간 제도입니다.

VIII.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뉴턴의 절대 시간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분명히 썼습니다. 절대 시간은 "그 자체로, 그 본성으로부터,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없이 균등하게 흐른다."

그 가정은 고전 물리학 전체를 떠받쳤고, 직관과도 맞습니다. 시계가 틀리면 시계가 문제이지, 시간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수정

1905년 특수 상대성이론은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동시성은 상대적입니다.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는지는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빠르게 움직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릅니다.

사고 실험이 아닙니다. 1971년 해펠과 키팅은 세슘 원자 시계 네 대를 상업용 여객기에 싣고 지구를 두 바퀴 돌아 지상의 시계와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상대론적 예측과 일치했습니다. 동쪽으로 간 시계는 느려졌고, 서쪽으로 간 시계는 빨라졌습니다. 지구 자전 때문입니다.

GPS는 매일 이것을 증명한다

GPS는 상대성이론의 가장 규모 큰 일상 응용입니다.

GPS 위성은 약 20,200킬로미터 상공에서 초속 약 3.9킬로미터로 움직입니다. 특수 상대성이론은 위성의 시계가 느려진다고 말합니다(하루 약 7마이크로초). 일반 상대성이론은 그곳의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시계가 빨라진다고 말합니다(하루 약 45마이크로초). 합치면 위성 시계는 지상보다 하루 약 38마이크로초 빠릅니다.

38마이크로초는 하찮게 들리지만, 그 시간에 빛은 약 11킬로미터를 갑니다. 이를 미리 보정하지 않으면 GPS 위치는 하루에 10킬로미터 넘게 어긋나고, 몇 시간 안에 쓸모없어집니다.

당신의 휴대전화로 길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상대성이론이 시스템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광시계: 높이 차이를 재다

오늘날 최고의 광시계는 불확도 10⁻¹⁸ 수준에 이릅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런 시계 두 대를 바닥과 1미터 높은 탁자 위에 각각 두면, 중력 퍼텐셜의 미세한 차이가 두 시계의 속도에 측정 가능한 차이를 만듭니다. 1센티미터의 높이 차이가 검출됩니다.

이것은 더 정확한 시계를 넘어섭니다. 새로운 종류의 계측기입니다. 시간 차이를 재면 중력이 재지고, 중력에서 고도와 지하수, 화산 변형을 잽니다.

에필로그

맨 처음의 농부에게 돌아가 봅시다. 그에게 한 시간은 하늘의 호였고, 여름에는 길고 겨울에는 짧았으며, 그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시간이 3,600초이고, 1초는 세슘 전이의 9,192,631,770 주기라고 말합니다. 이 정의는 우주의 나이만큼 긴 시간이 흘러도 1초 어긋나지 않을 만큼 정확합니다.

그런데 시계가 정확해질수록 더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시간은 세계와 무관하게 균일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간은 속도에 따라 늘어나고, 중력에 따라 압축되고,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시간을 태양에게서 빼앗아 시계에 넣었고,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시계가 재는 것은 세계와 시계 자신의 관계이지, 그 뒤에 있는 절대적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아마 이것이 이 역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결말일 것입니다.


참고 자료